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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Update

종조 신란성인 탄생 850년 입교 개종 800년 경찬법회 주제

진종대종파(히가시혼간지)에서는 2023년에 ‘종조 신란성인 탄생 850년 입교, 개종 800년 경찬법회’를 개최합니다. 이에 경찬 주제가 결정되었므로 알려 드립니다.

1. 종조 신란성인 탄생 850년 입교 개종 800년 경찬법회 주제
南無阿弥陀仏 人と生まれたことの意味をたずねていこう
“나무아미타불--사람으로 태어난 것의 의미를 물어보자.“


2. 주제에 담긴 바람
나는 이 땅에 이 시대에 태어났다.
이 삶을 성심을 다해 살고자 한다.
고뇌와 고통이 내게 밀려온다.
그럼에도 그것이 ‘삶’을 빼앗는 건 아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삶의 의지’에 귀를 기울이자.
그때 내게로 다가와 있는 목소리를 깨닫는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소리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부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
그 부르심의 울림 속에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의 의미를 부처님께 물어보자.

나를 앞서 살았던 사람들과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나게 될 사람들과
그 질문 하나를 함께 물어보자.

씨앗에서 싹이 터서 꽃이 피고, 꽃이 져서 씨가 남고 또 꽃을 피울 수 있도록.


3. 취지
(1) 왜 ‘나무아미타불’인가?
사람은 각자 인생에서 고뇌과 고통, 고독을 안고 살아갑니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기쁨도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희비가 교차하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버리고 기쁨을 선택하고자 하는데, 희비에 갈팡질팡하는 나를 받아 주시는 건 아미타불의 ‘섭취불사(摂取不捨)’의 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인 염불. 그것은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이 부르시는 목소리가 닿아 있다는 것이지요. 그 부르심을 들을 때, 고독했던 나는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종의 단가와 신자들은 염불에 의해 동붕(同朋)으로 연결되어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종조 신란성인 탄생 850년·입교 개종 800년 경찬법회를 맞이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는 것의 의미를 함께 확인했으면 합니다. 그런 바람에서 주제를 '나무아미타불'로 잡았습니다.

(2) 사람으로 태어난 것의 의미를 묻자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소중히 하셨습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의미' 찾기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거기에는 우열에 따른 가치의 유무가 생겨납니다. 한편, ‘사람으로 태어났다’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은 늙고 병들어 죽는 생명이요,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명으로부터 배웁니다.
신란성인께서는 '인간'이라는 말에 "사람으로 태어남을 뜻한다"고 주석을 다셨지요. 신란성인도, 성인의 가르침을 접한 사람들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관계성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태어난 의미와 삶의 기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구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나무아미타불에 의해 서로 일깨우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두손 모아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외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인연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죄업이 있는지 그것을 묻는 것이지요.

(3) 염불에 의해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사고방식과 삶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요. 각자 다른 사고방식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매우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전쟁과 차별, 괴롭힘, 학대 등……, 우리에게는 생명의 존엄성을 빼앗았던 역사가 있고, 지금도 그런 현실을 떠안고 있습니다. 함께 살면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2016년 7월 26일에 일어난 사가미하라(相模原) 장애인시설의 살상사건은 우리들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많은 장애인분들이 살해됐다는 것뿐 아니라, 가해자가 말하는 범행 이유에 공감하는 많은 의견이 SNS에 올라온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현대사회에 침전된 왜곡된 의식이 빚어낸 비극이지요. 가해자는 자기 긍정감을 가질 수 없는 사회 풍조 속에서 가치 없는 존재를 만들어 내서라도 자신을 내세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사람은 자신을 업신여길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자리가 있어야 자기 존재감을 획득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개개인의 차이(다름)를 인정하는 세계를 마주할 때 드러납니다. 차이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 세상은 나무아미타불에 의해 열리립니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염불의 힘에 의해서만 열리지요. 나와 당신과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염불이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의 있을 곳이지요.
염불이란, 내가 외는 게 아니라 "너는 내 이름을 외라"고 아미타불이 호소하는 소리입니다. 그 나무아미타불의 소리를 들을 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무아미타불이 함께하기에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4) 염불하는 사람이 되다
“하나 하나의 광명이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네. 염불하는 중생을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으리.” (불설관무량수경, 진종성전, 105쪽)

아미타불의 큰 자비가 끊임없이 항상 나를 비추고 있습니다. 큰 자비의 빛을 받지 못하는 이는 없습니다. 신란성인께서는 호넨상인과의 만남을 통해, 고뇌하는 중생으로서 나도 당신도 여래께서 염불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는 존재임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염불의 길을 후대 사람들이 연면히 계속 물었습니다.
신란성인의 탄생과 입교 개종을 경찬하는 일은 신란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내게로 다가와 내가 염불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 기쁨은 헤매고 고뇌하며 반복해 죄를 지어 온 내 처지의 통탄스러움을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요. 참회로부터 '함께'하는 게 시작됩니다.
신란성인은 나무아미타불의 의미를 학문이나 교양으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듣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과 만나게 될 "때"가 있음을 소중히 하셨습니다.
경찬법회를 계기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아미타불의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의 중요함을 생각합니다. 이전의 경찬법회에서 "태어난 의미와 삶의 기쁨을 찾아보자"라는 호소로부터 50 년이 흐른 지금, 다시 염불의 가르침에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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